들것

사랑의길 on 01/15/2021 04:29 PM

 

“지금 이 세상 어디서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서 누군가 웃고 있다

한밤중에 까닭 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웃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서 누군가 걷고 있다

정처도 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서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세상에서 까닭 없이 죽어가는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명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1-1992)는 스무 살에 건초염으로 그토록

소망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접고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릴케의 이 시

‘엄숙한 시간’을 읽고 크나큰 위안을 받았다.

세상 혼자인 줄 알았는데 어디서 나를 위해

누군가 울고, 웃고, 내게 걸어오고, 죽어가며

바라본다는 릴케의 위로가 생의 최대위기에

처했던 그녀를 구한 들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 역시 주변 누군가 희생과 격려가

들것이 돼 지금 여기까지 데려다 놓은 것을.

 

“중풍 병자가 누워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마르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