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사랑의길 on 05/06/2020 10:29 AM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군의 성공을 충심으로 비는 바다.”

거구의 중년 사내는 도시락과 물통을

하나씩 내밀며 더욱 비장하게 말했다.

“이것은 폭탄이다. 하나는 적장을,

다른 하나로는 그대의 목숨을 끊으라.”

“부디 선생님은 조국을 위해

몸을 삼가시고 분투하소서.”

위장폭탄을 둘러멘 청년의 음성은

회색양복 상의의 깃처럼 분명했다.

굳은 악수 후 청년이 차에 몸을 싣자

“지하에서 다시 만나세!”

목이 메어 더 말을 잇지 못하는

(山)만한 사내의 어깨가

풀무질을 당하듯 몹시 덜썩였다.

차가 모퉁이를 돌자 사내는

윗도리 왼쪽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냈다.

“선생님, 이제 몇 시간 후면

저는 이 시계가 필요없습니다.”

청년이 기념으로 서로 바꾸자던,

어제 선서 후 구입했다는 금장

회중시계,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는 1932년 4월 29일 아침,

중년 사내는 백범 김구 선생,

청년은 윤봉길 의사로서

훙커우 공원 의거 네 시간 전쯤이었다.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2,2)

오늘 주님께서 바르나바와 사울에게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셨다.

그날 서로 바꿔찼던 시계는 지금

주인들처럼 사명을 마치고

백범기념관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요한 1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