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의 평범성

사랑의길 on 01/31/2020 03:13 PM

 

유대인 출신 독일의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수백만 명의 학살 가담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고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다.

즉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은 타고난 악마적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선과 악 판단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한국의 독재정권 아래 고문을 수행하던 자들도 그랬다고 한다.

상급자의 지시이행이 곧 국가에 충성하는 것으로 아는 평범한 공무원들로서

각 가정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였던 것이다.

오늘 독서(사무엘하 11, 14-17)에 등장하는 요압도 바로 그런 인간이다.

우리야의 죽임을 교사하는 다윗의 편지를 받은 그는

수동적 타성에 젖어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명령 수행자’ 또는 ‘기계의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행복하여라, 주님이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마태 24,4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