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 요셉

푸른산 on 01/09/2020 02:28 PM

두어달 전, 본당의 C 형제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그간에 몇번 제기되었던 본당재정문제에 관한 질문이었다. 질문의 핵심은 지난 1년간 본당주보를 통해서 게재되었던 수입금의 총액과 본당재정결산에 나타난 수입금의 총액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문제 제기와 그문제로 인해 파생된 몇가지 이슈에 관한 것이었다.

‘이 이메일을 왜 나한테 보내지?’하는 의문이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메일의 수신인은 본당사무실과 재정위원장이고 cc로 해서 몇몇의 사목위원과 신자들이 포함되어있었다.(그 후 호놀룰루 교구와 대전교구의 몇몇분들이 추가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메일에서 cc(Carbon Copy)의 의미는 우리말로는 보통 참조라고 번역을 하는데, 이 이메일의 직접 수신인은 아니더라도 메일의 내용에 관련이 있는 분이거나 해당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을 지켜봐주시고 참고해주셨으면 하는 분들께 보내는 카피라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요셉이 역시 본당 신자고, 그 내용이 본당 일에 관련된 이메일이니 지켜보기로 했다.

그 이후 재정위원장이나 본당사제로부터의 회신과 답신을 주고받으며 몇차례 더 이메일을 받는 과정이 참조이메일로 도착을 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간의 경과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본당사목위원을 맡고있던 P형제님으로부터 또 다른 이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의 핵심은 메일을 보낸 C형제님에 대한 일방적인 훈계(? 요셉의 눈에는 그렇게 읽혀지니 표현의 오류가 있으면 용서하시길 바란다)와 함께 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느냐, 힘을 모아주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이미 공조를 하고 있는거 아니냐? 본인은 같은 마음이 아니니 이메일 명단에서 본인을 빼달라는 것이다.

글쎄.. 본당에 관련된 기쁘지만은 않은 이런 이메일을 받게되는 것이 마음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참조메일 수신자중 어느 분처럼 C형제님께 개인메일을 드려 명단에서 삭제해달라고 청하면 될 터. 본인 역시 모든 분들이 받아볼 수 있도록 회신을 하여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또 무엇인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을 조력자 또는 공조자로 몰아버리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까? 게다가 P형제님은 일반신자가 아니라 본당사목위원 중의 한사람인데 일반신자가 본당 일에대해서 묻는 이메일을 받아보고 사목위원중의 한분이 나는 공조자가 아니니 빼달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요셉이는 왜 성경 속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며 ‘이사람아 나는 아닐세’라고 하는 장면을 떠올랐을까?)

주고받는 메일 내용을 지켜보며 어떤 것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내용은 과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하고 또 어떤 것은 안쓰러워 눈물나기도 하지만 찬성의 표현을 해도, 반대의 표현을 해도 그 모든것이 편가름이 될 수 있고 분란을 야기할 수는 일이기에 아무말없이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던 요셉이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어느 순간에 공조자가 되어버렸다. 명단에서 빼달라고 요청하지않고 오고가는 메일을 지켜보고있다는 것만으로 공조자가 되어야하는 일일까? 교회공동체가 왜 우리네 정치판처럼 흑아니면 백이어야만하고 내편이 아니면 다 적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그 뒤로도 몇번의 이메일을 더 지켜보게 되었고 급기야 참조수신인 중의 한분이신 호놀룰루 주교님께서 답변을 하셨다고한다. 이 답변이메일에는 당연히 요셉이가 포함되지 않았으니 정확한 팩트를 모르는 관계로 언급하지 않겠다. 또 C형제님이 제기하신 의혹의 내용에 관련된 어떤 판단이나 언급도 이 자리에서는 하고싶지 않다.

그러던 어느날(약 2~3주 전으로 기억한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본당 사목위원중의 한분인 E자매님께서 뜬금없이 요셉이에게 와서 ‘C형제님의 이메일을 보았느냐? 주교님의 답변도 보았느냐? 내가 보기에는 C형제님이 정신병자같다. 왜 본당에 분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왜 나에게 묻지?’라고 의아해하며 ‘C형제님의 메일은 보았으며 주교님의 답변은 나는 모른다. 그런데 이 문제가 하루이틀 전에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C형제님이 해를 넘겨가며 묻는 질문인데 당당하게 사실을 밝혀서 보여주면 분란이 없을텐데 왜 이렇게 오랜시간 본당을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다소 격앙된 답변이 돌아온다. 이유없는 언쟁을 하고싶지 않아 ‘제가 문제를 제기한 것도 아니니 C형제님 여쭈어보라’는 말로 마무리하며 성당을 나서는데 ‘왜 내게?’라는 질문이 계속 뒷꼭지를 잡아당긴다.

그러고 한 이삼일쯤 지나서… 잘 아는 자매님께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레지오시간에 어느 사목위원에게서 C형제님은 정신병자이고 거기에 누구누구는 한패거리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후 어느 자매님께서 당신께 묻더란다. ‘요셉이를 그렇게 안보았는데 정말 그런거냐?’라고… 그리고 본당사제의 입에서도 C형제님의 메일을 받아보는 참조이메일을 받아보는 사람이 누구누구인지 안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도 전해들었다. 이 말씀은 또 무슨 뜻일까? (전해들은 이야기라는 것이 팩트이니 요셉이가 진실을 왜곡한 것이라면 바로 잡아주시고 용서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아~ 이거였구나. 그래서 E자매님이 내게 질문을 한 거였구나.’

이메일이 오고가는 과정속에서 당사자인 C형제님께서 참조메일 수신자는 본인 이메일 주소록에 등록되어있는 신자분 모두를 선택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느닷없이 진실을 밝힌다는 본당운영관련자의 이메일 속에서 요셉이는 ‘잘 읽어보고 바르게 성찰하십시오’라는 문구의 해당자가 되어야만 했고, 그 뒤 홈페이지에 올려진 글과 댓글을 통해서 요셉이는 패거리라는 이름으로 본당 물을 흐리는 몇몇의 못된 바리사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업데이트: 이 글을 올리고 하루만에 자유게시판의 댓글이 모두 사라졌네요. 게다가 댓글다는 기능자체도 사라져 버렸군요. 하루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홈페이지를 관리하시는 분의 단순실수이리라 믿으며 바로잡아 주시기를 청합니다. 본당사제께서는 이 홈페이지의 인삿말을 통해 '무엇보다도 우리 본당 공동체 모든 신자분들이 이 공간을 통하여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가능했던 자유게시판의 댓글기능조차 없어지면 어떻게 대화하고 소통하라는 것인지요?)

요셉이는 말을 못하거나 글을 못쓰는 바보였을까? 요셉이는 C형제님 글에 동조하며 함께 전면에 나서서 조목조목 따지지않고 뒤에서 협잡하는 음흉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뒤늦게 나서는 몇몇 분들처럼 C형제님께 따끔하게 훈계나 권고라고, 성찰하라고 겁박을 하지 못하는 비겁한 사람이었을까? (그렇다면 요셉이는 본당생활도 신앙생활도 잘못해온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바리사이 요셉이가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네. 저 요셉은 분명히 참조메일 수신자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삶 속에서 단 한번도 익명 속에 숨어서 어떤 일을 획책한 적도 없고 또 이번 일에서도 익명속에 숨어서 동조자가 될 의사도 없었습니다. 요셉이는 주보에든 홈페이지에든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때 어떤 경우에도 정확히 글쓰는 이가 누구인지를 밝혀왔습니다. 이번 일에 관해서도 요셉이는 분명한 의견과 판단이 있습니다만 어떤 방식으로 요셉이의 의견을 표시하더라도 분명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일이 될 것이며 본당 신자들의 편가르기가 될 것이고 분란을 초래하는 일임을 알기에 차오르는 분노나, 안타까운 마음이나, 안쓰러운 마음 모두를 삼키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간 이메일을 쓰거나,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개인적으로 질문을 하거나, 뒷담화를 하시는 모든 분들께 묻습니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어떤 기준으로 참조수신인 중의 일부를 골라 같은 패거리라 칭하며, 본당 신자들간에 파벌을 조성하고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까? 당신만 빼고 모든 참조수신인을 같은 패거리라 몰아버리신다면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조수신인에는 일반 신자도, 본당 사목위원도, 주교님도, 교구담당자도, 또 다른 신부님도 계십니다. 그 중에서 당신 또는 당신들의 입맛에 맛게 골라서 누구누구는 우리 편이고, 누구누구는 같은 패거리이고 바리사이같은 존재라 칭하시려면, 분명하게 그 기준과 근거를 말씀해주십시오. 그것이 타당한 이유라면 요셉이는 기꺼이 바리사이로 매도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래에 게시된 글 중에서 터보에어님이 올려주신 홍성남 신부님의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해봅니다. ‘(전략)..바리사이들은 스스로를 영성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종교적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실제로 이들은 당시 평신도 영성지도자로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그런데  주님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것일까요그들이 지나치게 율법주의에만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강박적으로 율법에 집착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하였고법은 보았지만 사람은 보지 못하였기에 사람을 위하여 강생하신 주님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것입니다..(후략)’

교회법을 운운하고 교구의 방침이나 교구의 제도를 우선시하며, 법은 보았지만 사람은 보지 못한 바리사이가 과연 누구일까요?

김용태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