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

사랑의길 on 02/18/2020 04:36 PM

 

작가 고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은 생전

저 세상에 아들을 먼저 보내고

애통과 절망 속에 이렇게 몸부림쳤다.

“살고 싶지 않은 게 조금의 거짓이 아닌 이상

육신은 의당 거기 따라주려니 했다.

그러나 내 육신은 내 마음과는 별개의 남처럼

끼니 때마다 먹고 살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오늘 제자들이

빵이 한 개밖에 없음을 알고

서로 수군거리고 있다(마르 8.14-17).

사실 스승은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것으로 채울까

영적 허기(虛飢)를 걱정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그냥 거저 공복(空腹)을 채울

빵이 없음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죽음으로 주님의  부재와

처절한 실존의 극형가운데서도

집요하게 달려든 허기에 대해

하염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꼈던 박완서는

어느날 변기 모퉁이를 잡고 구원을 받았다.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비로소 그녀는 지독한 영적 허기를 벗었던 것이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르 8,21)